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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이름 관리자 이메일 juluesung@daum.net
작성일 2019-08-19 조회수 535
제목
천황가의 기원은 백제 부여씨 - 날조된 천황 37명과 일본고대사

■ 책 개요

▪ 저자 : 이원희

▪ 판형 및 페이지 : 176 X 226mm / 640 페이지

▪ 발행일 및 가격 : 2019년 8월 26일 / 가격 29,000원

▪ ISBN 978-89-6246-401-6 03910

 

■ 책 소개

 

무려 2,679년이라는 전무후무한 역사를 이어온 일본 천황가(天皇家)는 어디서 기원하였는가?

일본 사람들은 일본을 통치한 천황가(天皇家)의 역사가 아주 오래된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의하면, 초대 천황이라는 신무(神武)가 기원전 660년에 즉위한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서기』는 이때부터 서기 687년에 즉위한 40대 지통(持通)에 이르기까지 단 한번의 왕조교체도 없이 계속하여 이어져 내려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697년 즉위한 문무(文武)천황부터 현재의 영화(令和)천황에 이르기까지, 천황가의 왕통이 계속된 것은 의심할 바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렇다면 일본 천황가는 기원전 660년 즉위하였다는 신무 이래 2019년 현재 시점까지, 무려 2,679년이라는 길고도 긴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단 말인가? 전 세계에서도 전무후무한 이 기적 같은 일이 과연 사실일까

그것이 사실이라면, 천황가는 어디서 기원하였는가? 섬나라 일본에서 자생하였을까? 아니면 바다를 건너간 사람들이 정복왕조를 세운 것인가?

 

 이렇게 오래된 천황가의 역대 천황들은 하나같이 이름만 있고 성은 없다.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의하면, 초대 신무는 현대의 규슈(九州) 가고시마(鹿兒島)현 휴우가(日向)라는 곳에서 대군을 이끌고 동쪽으로 진군하여, 나라(奈良)현 아스카(明日香)에 있던 적을 무찌르고는, 그곳에 정착하여 왜국을 통치하였다 한다. 그렇다면 초대 신무는 바다 너머에서 건너간 것이 아니라 토착왜인인 셈이다. 위 두 책에는 토착왜인인 역대 천황들이 아득한 옛날부터 단 한 번의 왕조 교체도 없이 왜국을 통치하였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래된 천황가의 역대 천황들은 하나같이 이름만 있고 성은 없다. 이러한 현상은 초대 신무부터 현대의 영화(令和)천황에 이르기까지 전혀 변함이 없다. 현대의 문명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 중에서 성은 없고, 이름만 가진 사람은 아마도 일본의 천황가 사람들 외에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고대의 왜국(한국도 마찬가지)에도 일반 평민은 성이 없고, 이름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귀족들은 당연히 성이 있었다. 성이 없는 귀족은 단 한명도 없었다. 오직 천황가의 사람들만 예외였던 것이다. 천황가는 성이 없으니 그 뿌리를 추적할 단서마저 존재하지 아니한 셈이다.

 

『일본서기』에서 밝힌 시조 신무조차 실존 인물이 아니라 저자가 창안해 낸 가공의 인물인 것이다.

신무의 뒤를 이은 수정(綏靖)으로부터 9대 개화(開化)까지의 8대 왕을 일본의 사학자들은 ‘결사8대(缺史八代)’라는 용어로 일컫고 있다. 역사가 빠진 8대라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일본서기』나 『고사기』에 이 왕들의 행적이나 나라에 있었던 일이 전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은 궁의 위치, 왕비와 자녀들의 이름, 사망한 해와 나이, 묘지의 위치 등이다. 그렇지만 왕에 관한 역사를 쓴다면 당연히 기록하여야 마땅한 여러 치적, 나라에 있었던 일, 여러 신하에 관한 기록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리하여 일본의 사학계에서는 근래에 들어 이 신무를 포함한 9대 왕들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려놓았다. 이 점에 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는 거의 없다.

『일본서기』는 이렇듯 철저하게 왜왕가의 기원을 감추고 있다. 시조인 신무조차 실존 인물이 아니라 저자가 창안해 낸 가공의 인물인 것이다. 『삼국사기』와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왜왕가의 출자를 철저하게 은폐하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연 천황가 즉 왜왕가는 어디에서 기원하였단 말인가?

 

백제가 멸망하고 돌아갈 터전이 사라진 백제인들은 정체성을 버리고 왜인과 동화되는 길을 선택한다.

7세기 말의 일본열도에는 참으로 다양한 원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었으나, 그중에서 주도권을 가진 것은 백제 멸망 이전부터 도왜하여 살고 있던 구백제계 귀족들이었다. 백제의 개로왕 무렵에 도왜하였던 목만치(木滿致)의 후손인 소아(蘇我)씨, 소아 가문에 의하여 멸망한 물부(物部)씨, 백제 멸망으로부터 불과 얼마 전에 도왜하였던 중신(中臣)씨 등이 대표적인 구백제계이다.

『일본서기』는 이러한 구백제계는 토착왜인인 것처럼 처리하여, 백제계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은폐하였다. 마치 천황가의 가계가 아득한 옛날, 천지창조 무렵부터 왜국에 붙박아 살고 있었다고 서술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백제계 사람들은 왜 자신들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스스로 토착왜인으로 신분세탁을 하고 동화하려 했을까. 그만큼 백제계 귀족들에게는 절박한 사정이 있었다. 백제가 멸망하고 신라의 영토가 되어 버렸으니, 한반도에는 그들이 돌아갈 곳이 어디에도 없었다. 돌아갈 터전이 사라진 백제인들은 정체성을 버리고 왜인과 동화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한 「왜인화 정책」을 뒷받침하는 선전광고 책자로 등장한 것이 『고사기』와 『일본서기』라는 두 역사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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