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기 일본열도의 대격변, 그 주역은 '왜왕권'이 아니라 '금관가야'였다!"
- 일본 학계의 치밀한 궤변 '왜왕권론'을 정면 반박하고, 가야 정복영웅들의 숨겨진 역사를 추적하다
5세기 초 일본열도는 요동치는 대변혁의 시기를 맞이하였다. 광개토대왕의 남정군에 대패한 이후, 금관가야인들의 대이주 집단이 바다를 건너 조직적·집단적으로 도래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사카 지역에 가와치(河內) 세력을 형성하고 일본 방방곡곡으로 진출하여 수많은 소국을 건설하였다. 기마문화, 갑옷과 투구, 도질토기 등 선진 문물을 전파하였으며, 지배층 역시 제사장에서 전투적 기마문화에 숙달된 고위 무사로 급격히 교체되었다. 현대 일본 학계는 이러한 대격변을 '왜왕권이 주체적으로 선진문물을 수용한 결과'라 주장하며, 도래한 가야인을 하층민이나 단순 기술 공인으로 치부해 왔다.
신간 『가야인의 대도래와 일본열도의 대변혁』은 일본 고고학계가 구축한 '왜왕권 이론'의 허구를 철저히 파헤치고, 5세기 일본열도의 대격변을 이끈 주역이 금관가야 대이주 집단이었음을 언어, 지명, 유적, 문헌 등 풍부한 증거를 통해 명쾌하게 입증한다.
임나일본부론의 변형된 신화 '왜왕권론'을 해체하고,
5세기 한일 관계사의 은폐된 진실을 복원하다
1. 임나일본부론의 '스마트한 변형', 왜왕권 신화의 가면에 균열을 내다
과거 일제 황국사관에 기반한 '임나일본부론'이 논리적 한계에 부딪히자, 현대 일본 학계는 '왜왕권이 위기감을 느껴 주체적으로 기마문화를 수용했다'는 한층 세련된 이론을 내세웠다. 한국 학계마저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이 '왜왕권론' 역시 본질은 고대 한국에 대한 우위를 포장하려는 궤변에 불과하다. 저자는 『송서』, 『수서』 등 중국 문헌을 바탕으로 7세기 초까지도 일본열도가 소국분립 상태였음을 입증하며, 왜왕권의 존재 자체를 단칼에 반박한다.
2. 금관가야인의 대도래, 일본열도를 개척하고 지배하다
4세기 중반부터 왜지에 우호 세력을 구축해 온 금관가야 지배층은 5세기 초 백성들을 이끌고 집단적으로 도왜하였다. 가와치(河內) 세력 및 길비(吉備)왕국 등 신흥 세력의 성립, 천일창(天日槍) 전승, 일본 최대 씨족인 진씨(秦氏)의 활약은 모두 가야 정복 영웅들이 남긴 기록이다. 본서는 5세기 일본을 지배했던 중추 세력이 금관가야인이었으며, 6~7세기는 백제인이 그 뒤를 이었음을 밝혀낸다.
3. 언어·지명·유적·문헌으로 증명하는 가야의 선명한 흔적
일본 전역에 남아 있는 '가야(加羅)', '파타(秦)' 지명과 일본어 속 가야 언어의 흔적, 그리고 『일본서기』와 『파리마국 풍토기』 등에 기록된 가야 도래인들의 전승을 다각도로 분석한다. 나아가 고훈시대 거대 고분의 실제 주인공과 산성, 제사 유적에 담긴 고대 한국어의 비밀을 명쾌하게 풀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