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대의 왕권신화를 《삼국유사》에서 뽑아 소개하고 논의
신화(神·話)는 문자 그대로 ‘신(들) 이야기’다. 자료의 바탕이 역사책인 만큼 ‘거룩한 역사 이야기’로 범위가 좁혀진다. 아주 옛날, 나라를 세우고 일으킨 이야기를 적어 놓았으니 ‘전설’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그만큼 왕권신화는 인간과 문화·제도가 이미 장치(set)되어 있다. 우주의 순환이나 인간의 탄생·갈등 같은, 시작도 끝도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가 된 왕들의 이야기’를 말한다.
「삼국유사에 실린 한국의 왕권신화」는 3가지 관점에서 우리 고대의 왕권신화를 소개하고 있다.
첫 번째, 단군신화를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고 해부해 본다. 독자들 가운데는 ‘단군- 신화’라는 용어가 탐탁하게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문자가 없던 태고/상고시대의 모습과 경험은 이야기로밖에 전해지지 않았으니 신화와 역사를 구분함이 얼마나 가능하며 또한 의미 있는 일인지 돌이켜보았으면 한다. 신화를 분석하여 그것이 역사를 어떤 식으로 반영하고 있는지 함께 음미해보자. 나라를 세운 이야기는 신의 도움을 받는다든지, 사람과 짐승 사이에 대화가 이루어졌으므로 신화로서 모자람이 없다.
두 번째, 신라 중고시대 왕들의 ‘거룩한 이야기’를 역사로 읽는다. 나라를 세운 다음에도 위업을 지켜나간다는 과제가 남아 있다. 신성한 나라를 지킨 왕들 기사는 《삼국유사》 기이편에 들어 있다. 그들은 여느 나라 임금과 다르며, ‘하느님이 보우하사’ 천 년 사직을 지켜온 서사(敍事)가 적혀 있다. 신라 중고시대 왕들의 신성 혈통을 일러 ‘성골’이라 한다. 그 신성함이 인도 신화에까지 닿는 선덕여왕은 초인적이지만 내면으로는 처절했던 시대 배경을 《삼국유사》는 펼쳐 보인다. 호사가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여왕의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 역시 잘 짜여진 신화다. 삼국을 통일하고도 동해바다 용이 되어 잠겨 있는 문무왕은 또 어떠한가? 아들 신문왕은 아버지 임금의 영령을 맞아 왕조의 보물 대나무/만파식적을 얻어 궁중에 모셨다. 이후에도 부왕 맞이가 지속되도록 이견대라는 사당이 지어졌다. 대나무라는 신체(神體)로 (해)신을 모시는 사례가 다른 지역에는 없는지 비교·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신화’임에도 굳이 ‘역사’로 끌어내려 제례나 가장행렬을 하는, 아직 신화시대의 이웃들에게 박수를 쳐야 할지 말려야 할지 시방도 말이 많다.
세 번째, 백제 무왕을 논한다. 빈한한 총각이 신라 선화공주와 인연을 맺어 왕위에 오르고, 동양 최대를 자랑하는 익산 미륵사를 세웠다. 다행히 무왕신화는 역사 차원으로 내려왔는데, 미륵사 서탑 사리봉영기에 왕비의 성씨는 ‘사택(沙乇)’으로 적혀 있다. 당대의 유물이 나온 지 15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선화공주 망령은 여전히 왕릉에서 맴돌고 있다. 더하여, 무왕이 신라 서울에 가서 불렀다는 노래 ‘서동요’가 익산에서 채록되어 향가 해독에 진전을 볼 수 있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