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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과 김화 백전전투
정상가 22,000원
판매가격 19,800원
적립금 0원
제조사 주류성출판사
엮은이 태봉학회
상품 정보 판형 150 X 220mm / 분량 316쪽
발행 정보 발행일 2022. 12. 28 / ISBN 978-89-6246-495-5 (9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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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봉학회 총서 4

 

​병자호란 중 조선군이 거둔 몇 안 되는 승전 중 하나인 ‘김화 백전전투’의 비밀을 풀다

 

16~17세기 동아시아 3국은 큰 변동을 겪었다. 그 직접적인 계기는 임진왜란(1592~1598)이었다. 조선 침공의 실패로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은 붕괴하고, 에도막부가 성립하였다. 대규모 구원병을 파견하였던 명은 그 몰락의 속도가 빨라졌다. 인적, 물적으로 큰 피해를 본 조선 왕조는 새로운 지배 질서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왜란으로 인한 혼란을 미처 수습하기도 전에 두 차례의 호란을 겪게 되었다.

 

명의 국력이 쇠약해진 틈을 이용하여 만주의 여진족은 후금을 건국하고, 명과 패권을 다투기에 이르렀다. 후금과 그 후신인 청은 배후의 조선이 친명정책을 추구하는 것을 우려하였다. 그리하여 1627년과 1636년 두 차례 조선을 침입하였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그것이다. 정묘호란은 양국 간의 화의로 종결되었다. 하지만 병자호란은 1637년 1월 30일 인조가

청 태종에게 항복함으로써 끝났다.

 

1636년 12월 14일 한양 인근에 도착한 청군의 선봉대는 강화도로 가는 길목을 차단하는 한편 인조가 피신한 남한산성을 포위하였다. 이어 청 태종이 대군을 거느리고 남하하여 합세하였다. 남한산성에 고립된 조선 조정은 각도의 근왕병이 구원해줄 것을 기대하였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청군에 의해 격퇴되고 말았다. 김준룡 휘하의 전라도 근왕병이 경기도 용인 광교산에서 청군을 무찔렀지만 곧 해산하였다. 유림이 지휘하던 평안도 근왕병은 강원도 김화의 백전(栢田)에서 크게 승리하였다. 인조가 곧 항복함으로써 이들은 근왕병으로서의 임무를 다할 수 없었지만, 이 승리는 병자호란 중 조선군이 거둔 몇 안 되는 승전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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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를 펴내며
수록 논문의 출처

제1부. 병자호란의 제문제
병자호란 연구의 제문제
- 조성을 (아주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明淸交替 시기 朝中關係의 추이
- 韓明基 (명지대학교 사학과 교수)

병자호란의 開戰원인과 朝·淸의 군사전략 비교연구
- 이종호 (건양대학교 군사학과 교수)

朝鮮 政府의 捕虜 送還 노력
- 강성문 (전 육군사관학교 사학과 교수)

제2부. 김화 백전전투
17세기 전반기 조선의 대북방 방어전략과 평안도 국방체제
- 노영구 (국방대학교 군사전략학과 교수)

丙子胡亂의 戰況과 金化戰鬪 一考
- 柳承宙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丙子胡亂 金化 栢田戰鬪 考察
- 권순진 (수도문물연구원 실장)

戰骨塚의 조성 경위와 위치 比定
- 柳在春 (강원대학교 사학과 교수)

김화 백전대첩(栢田大捷) 유적의 현황과 보존대책
- 이 재 (국방문화재연구원 원장)

부록
태봉학회 활동 및 철원군의 역사·문화 관련 동향
- 김영규 (태봉학회 사무국장·철원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조성을 (아주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韓明基 (명지대학교 사학과 교수)
이종호 (건양대학교 군사학과 교수)
강성문 (전 육군사관학교 사학과 교수)
노영구 (국방대학교 군사전략학과 교수)
柳承宙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권순진 (수도문물연구원 실장)
柳在春 (강원대학교 사학과 교수)
이 재 (국방문화재연구원 원장)
김영규 (태봉학회 사무국장·철원역사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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