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이천 년의 창窓 - 북한산성으로 보는 왕국의 영욕과 성쇠
북한산성이라는 ‘역사의 창’을 통해 우리 역사 2천 년을 재조명했다. 북한산성과 관련된 역사 사실과 사건을 중심으로 기원전 18년 백제 건국에서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 멸망과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의 각 왕조의 영욕과 흥망성쇠를 다루었다.
북한산은 백제 건국과 조선 개국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연 약속과 희망의 산이었다. 삼국시대 북한산과 북한산성은 욕망과 꿈이 뒤섞이고 삶과 죽음이 교차하던 정복과 전쟁의 땅이었다. 고려시대엔 불교가 꽃을 피운 믿음과 구도의 도량이자 종교와 권력이 만나 영속을 다지던 속(俗)의 제단이었으며, 고려 말엔 왕도의 나라를 세우려던 혁명가의 숲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북한산성은 전란의 치욕을 딛고 민족의 자존을 세울 부국강병의 초석이었으며 왕국의 영광과 군주의 기개를 드높일 흔들림 없는 성채였다. 왕권과 신권(臣權), 신권과 신권이 부딪치던 권력투쟁의 장이기도 했다. 조선 선비와 사대부의 풍류 계곡이었고 장인과 역부, 유랑민과 농부의 삶의 언덕이기도 했다.
이 같은 역사 사실을 한 축으로 놓고 그와 연관된 인물의 행위와 에피소드를 다른 한 축으로 삼아 이야기를 구성해 북한산성 관련 정보를 전하고 시대의 흐름과 성격을 짚어나갔다. 북한산과 북한산성이라는 한 사회적·역사적 공간을 둘러싸고 벌어진 영토전쟁의 실상과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의 결합 양상을 알아보았으며, 권력유지와 통치의 도구로서의 성(城)이라는 측면도 살폈다.
어제의 유적은 오늘 역사의 숲이 되어 살아난다 - 사회적 공간, 역사의 공간으로서의 북한산성
삶에 있어서 ‘공간’은 주체나 대상과 상관없이 주어지는 특정된 장소가 아니라 주체들 간의 행위와 주체와 대상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관계의 장(場)이자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동의 망(網)이다. ‘사회적 공간’, ‘역사의 공간’은 그래서 생산되는 것이자 생산하는 것이라 했다. 또한 공간은 시간을 벗어날 수 없기에, 동일한 ‘역사의 공간’이라 해도 시대를 거치면서 하나의 성격이나 이미지로 고정되지 않고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시대가 지나면 그런 ‘역사의 공간’은 유적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보이느냐에 따라서 유적은 지난 시대의 증언을 넘어 현재를 규정하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때론, 이런 역사의 궤적은 오늘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의 향방에 영향을 미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경기도 고양시와 서울시의 경계 지역에 있는 지금의 북한산성은 조선 숙종(재위: 1674∼1720) 때인 1711년에 쌓은 석성이다. 백제 개루왕(재위: 128∼166) 때인 132년에 쌓은 북한산성이 지금의 북한산성 자리에 있었던 성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서울 지역의 한강 이북에 삼국시대의 북한산성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고려시대엔 지금의 북한산성 자리에 중흥산성이라 불린 석성이 있었다.
이 북한산성은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의 주된 흐름과 시대별 성격을 담고 있는 우리 역사의 고갱이이다. 북한산성은 역사의 주체와 또 다른 주체, 지배세력과 그 대상이 부딪쳐 생산된 ‘사회적 공간’이었다. 사회를 밀고나가고 시대를 규정하는 권력과 통치전략, 그에 반응한 삶이 펼쳐지던 곳이었다. 북한산성은 시대에 따라 새롭게 생산되는 ‘역사의 공간’으로 각 시대에 따라 그 성격을 달리 했으며, 산속 깊은 곳의 성(城)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와 종교, 권력과 통치, 생존과 삶이라는 사회현실과 끊임없이 부대끼던 살아있는 공간이었다. 북한산성은 2천 년 한국사의 바람, 그 영욕의 세월을 모두 안은 ‘역사의 성'이며, 어제의 유적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도 사회적 공간, 역사의 공간으로 새롭게 생산되고 있다.
전쟁과 정복, 정치와 종교, 권력과 통치, 생존과 삶 - 북한산성 이천 년의 바람
북한산과 북한산성, 한강이라는 전략 지역을 둘러싼 삼국시대 영토전쟁의 실상과 함께 개국의 산이자 전쟁과 정복의 땅이라는 역사 공간으로서의 북한산과 북한산성의 성격을 규명했다. 북한산과 한강 지역의 고대 성곽 특성과 삼국 간 성곽전투의 양상을 알아보고, 이 지역 성곽 전투의 결과가 삼국의 역사 향방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았다.
고려시대 북한산성 지역의 불사(佛事)와 승려의 활동, 왕가와 귀족의 북한산성 지역 사찰 후원이라는 역사 사실을 통해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의 결합 양상을 파악하고, 그 과정이 빚어낸 빛과 그늘을 보이고자 했다. 고려시대 호국불교의 이면에 숨은 통치전략의 한 단면도 살펴보았다.
조선시대 북한산성의 승군(僧軍) 활동 실상을 파악해 조선의 지배층이 불교 억압 일변도의 정책을 펼친 것이 아니라 체제유지와 국가방위의 필요에 따라 불교를 용인하고 때로는 포용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지배 권력과 체제 내 종교의 공존 배경을 검토했다.
조선 건국 후 북한산을 진산(鎭山)으로 삼아 한양에 도읍을 정하는 과정에서 건국의 주체세력이 보여주는 ‘공간 배치’를 통한 정치권력의 자기 정당화와 권위 형성의 상징화 기능을 살펴보았다. 조선의 지배세력은 궁궐을 도읍지의 한복판에 지어 왕권의 절대성과 신성함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도읍에서 한쪽으로 치우친 산(북악산과 북한산) 아래 위치시킴으로써 ‘궁궐-산-하늘’이 하나의 선상에 맞닿아 이어지게 했다. 하늘이라는 천체가 가진 신성성과 절대성이 산을 통해 내려오고 이는 다시 궁궐로 전해지니, 결국 하늘의 신성성과 절대성은 지상의 왕에게로 귀속된다.
사료와 현장 연구자료를 토대로 조선시대 숙종 대의 북한산성 성곽과 행궁, 군사시설물 현황을 파악하고 축성법과 성곽의 특성을 밝혔다. 북한산성 축성은 조선 후기 최대의 국가 토목 프로젝트였으며, 북한산성은 당대의 경제력이라는 토대 위에 최고의 토목기술과 과학지식, 여기에 지배층의 비전이 결합돼 이뤄낸 방위시설이자 당시 조선의 사회적 역량을 보여주는 증거물이기도 하다.
숙종 대의 북한산성 축성과정을 통해 북한산성 축성의 사회적·정치적·역사적 배경을 알아보고, 숙종 이후 영조와 정조를 거쳐 조선 멸망과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시기의 북한산성 관리 실상도 살폈다.
이와 함께, 숙종 대의 북한산성 축성을 둘러싼 37년 동안의 찬반논쟁을 통해 왕권과 신권의 다툼, 신권과 신권 간의 갈등이라는 권력투쟁의 장으로서의 성(城)을 조명했다. 왕가와 지배층 존속을 위한 피난지이자 전쟁에 대비한 최후의 보루로서의 항쟁지라는 북한산성의 역할 외에 통치 이데올로기와 지배체제 유지의 도구로 활용된 성(城)이라는 ‘공간의 정치 도구화’까지, 시대에 따른 북한산성의 다양한 얼굴을 드러내고자 했다.
북한산성이라는 ‘역사의 창’으로 보는 한국사의 한 흐름
『성과 왕국』 26장의 각 장은 독립된 에피소드와 내용으로 구성돼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고대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한국사의 한 흐름을 보여준다. 북한산성과 북한산이라는 특정 지역을 두고 벌어진 고대 영토전쟁의 실상과 그 결과가 가져온 역사의 향방, 북한산 지역의 사찰과 불교문화 융성이 보여주는 정치와 종교의 결합 과정과 그 결과, 북한산성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일어난 권력투쟁과 통치 이데올로기 구사의 한 단면, 북한산성에 관련된 역사 인물의 활동과 북한산성이라는 특정 역사의 공간을 통해 본 시대별 왕조의 흥망성쇠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한국사의 한 흐름을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북한산성 관련 역사 사건과 일화를 소재로 삼아 장(章)의 도입부를 이야기 형식으로 꾸몄다. 소설 형식과 다큐멘터리 구성기법으로 스토리텔링을 구사해 내용 전개에 현장감을 살리고 흥미를 더했다.
고지도와 초상화를 포함한 150여 장에 이르는 화보를 실었다. 현재의 북한산성 현장 사진뿐 아니라 19세기 말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1980년대에 이르는 북한산성 옛 사진을 게재해 책보는 재미를 더했다. 1880년대에 북한산성 산영루에 오른 외국인과 이들의 산행을 도운 조선인들을 촬영한 사진, 20세기 초 북한산성 내의 민가와 사찰터 사진, 1911년 북한산성 대성문에 모여 있는 조선 백성들을 담은 사진은 왕국의 쇠락과 망국의 애잔함을 자아내며, 1960년대에 미군이 촬영한 북한산성 성벽 사진은 성곽 원형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사진 제목이나 명칭만이 아니라 사진 관련 정보를 함께 전달해 책 내용의 다양화를 꾀했다. 본문 내용을 축약하거나 본문의 문구를 그대로 따온 사진해설이 아니라 새로운 정보를 정리해 실음으로써 볼거리와 함께 읽을거리를 풍부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