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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대 연해주 이주부터 오늘날 ‘역사적 조국’ 한국과의 만남에 이르기까지 잊힌 역사의 진실을 복원하다
이 책은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에 흩어져 살고 있는 50만 고려인의 150년 역사를 개괄한 통사(通史)다. 한국의 역사학계는 지금까지 ‘카레이스키 통사’, 즉 유라시아 고려인 통사를 내놓은 적이 없다. 사학자가 아닌 한 언론인이 그 통사에 도전했다. 이 무모함에 학계가 어떤 평가를 내릴지 두렵고 궁금하다. 필자는 이 책의 집필을 위해 지난 10년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각국에 대한 10여 차례의 현지답사, 관계자 면담, 문헌연구 등에 많은 땀을 흘렸다.
<디아스포라 고려인 150년사>는 고려인들의 1860년대 연해주 이주부터 시작해 오늘날 ‘역사적 조국’ 한국과의 만남에 이르기까지 잊힌 역사의 진실을 복원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통할 通자 通史이나, 서술의 초점을 고난과 시련으로 점철된 고려인의 한 많은 역사에 맞춘 만큼 아플 통(痛)자 ‘痛史’로 보는 것이 좋겠다. 이 책은 고대 서역을 누빈 고구려 사절, 신라 구도승 혜초, 고구려 유민 고선지 장군 등도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원조(元祖)로 보고 이들의 행적을 전사(前史)로 곁들였다.
고려인을 현대판 디아스포라로 내몬 1937년의 고려인 강제이주는 소련 국가테러리즘의 극치였다. 그 진상을 비롯하여고려인에 대한 탄압의 역사는 강요된 침묵 속에 묻혀버린 것이 너무 많았다. 그들의 참담한 역정(歷程)이 세상에 알려진것은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소련 고문서의 비밀이 해제되면서부터다.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에서 고려인에 관한 많은 자료가 발굴되고 재해석되어, ‘잃어버린 역사’의 복원이 시작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이 책은 고려인 사회의 그러한 축적을 바탕에 두고 한국 사학계의 연구실적과 저자의 개인적인 연구결과 등을 종합하여 고려인 150년사에 관해 총체적인 정리를 시도한 것이다. 역사의 교훈을 기억하는 민족이라야 진화(進化)하고 영생(永生)할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신념이다.
이 책은 과거 차르시대와 스탈린시대의 고려인 삶에 대해 차별받고 탄압받고 착취당한 피지배 소수민족의 입장에서 천착하고 고발했다. 특히 원동의 고려인 18만 명을 일거에 중앙아시아로 추방한 스탈린 정책의 잔인한 본질을 규명하는데 주력했다. 스탈린 정권의 고려인 탄압은 세계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의 잔혹한 탄압사였고 인권유린의 부끄러운 인류사였다.
아울러 이 책은 고려인의 1920년대 친일행적, 해방 후 북한건국 참여와 김일성에 의한 숙청, 소련 붕괴 이후의 국가별 재이주 상황과 2000년대의 역동적인 재기 노력 등을 통사의 한 편으로 엮었다.
‘유라시아고려인-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 150년’은 초쇄 후 10개월 만에 내는 이번 개정 증보판을 통해 내용이 보다 충실하고 정치(精緻)해졌다. 책의 뼈대와 주지(主旨)는 그대로 두면서 새로 발굴한 팩트(fact)와 에피소드를 많이 추가했다. 일부 오류도 바로 잡았다. 연해주 이주원년(元年)을 둘러싼 논란을 상술하고 초기의 국경무역을 새로 넣었다. 사할린고려인 역사에 관한 내용도 보완했다. 각종 통계를 업데이트하면서 고려인의 국가별 분포현황과 지역별 거주상황 등을 손질했다. 이 과정에서 외교부의 고려인 인구통계 오류를 발견해 바로 잡기도 했다.
필자는 젊음을 취재 현장에서 보낸 저널리스트다. 이 책에 쓰인 방법론이 학문적 접근 못지않게 저널리스틱한 어프로치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필자의 이런 전력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고려인들의 인생역정에 관한 기록의 대부분은 필자가 직접 찾아가 성사시킨 인터뷰에서 얻은 것이다. 이 책이야말로 학구적인 아카데미즘과 발로 쓰는 저널리즘의 합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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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고, 굶주렸던 카레이스키의 처절한 역사 (문화일보. 2013. 1. 4 ) |
관리자 |
2014.08.19 |
879 |
버림받고, 굶주렸던 카레이스키의 처절한 역사
러시아·중앙亞 10년간 탐사
유라시아고려인 150년 / 김호준 지음 / 주류성
고려인들은 스탈린 시절에 자신들이 ‘만쿠르트’의 삶을 살았다고 말한다. 만쿠르트는 침략자들이 말가죽을 씌워 기억을 잃어버리게 만든 노예다. 자신의 정체성을 알지 못한 채 노동만 하고 살아가는 키르기스스탄 전설 속 형상이다. 고려인들은 1860년대부터 두만강 건너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했다. 이때 이미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은 기민(棄民)이자 굶주린 기민(飢民)이었다.
조선인의 역외 개척 현장이었던 연해주는 역사적으로 볼 때 한민족 생활권이었다. 하지만 소수민족을 탄압했던 스탈린 정책에 따라 고려인들은 1937년 중앙아시아 허허벌판으로 강제 이주당했다. 고려인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비극적인 사건이다. 이후 고려인들은 고향과 뿌리, 역사에 대한 기억상실을 강요당했다. 저자는 고려인을 현대판 디아스포라로 내몬 강제이주는 소련 국가테러리즘의 극치였다고 지적한다. 스탈린 사망 이후 1956년 소련공산당 제20차 전당대회를 계기로 고려인들은 강제이주로 떠나온 고향 ‘원동(遠東)’에 대한 그리움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책은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에 흩어져 살고 있는 50만 고려인의 150년 역사를 개괄한 통사(通史)다.
현재 고려인의 한국 취업자수는 1만여 명, 한국으로의 영주귀국은 약 4000명에 이른다. 올해는 고려인의 선조들이 연해주로 이주하면서 한민족의 영역을 대륙으로 넓히기 시작한 지 150주년 되는 해다.
책은 잊힌 역사의 진실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고난으로 점철된 고려인의 한 많은 역사에 포커스를 맞춘 만큼 ‘아플 통(痛)’자를 쓰는 통사(痛史)이기도 하다.
국내 역사학계는 지금까지 ‘카레이스키 통사’, 즉 유라시아 고려인 통사를 내놓은 적이 없다. 사학자가 아닌 한 언론인이 그 통사에 도전했다. 저자는 평소부터 역사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저널리스트답게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했고, 현장을 파고드는 치열한 탐사 정신이 더해졌다. 저자는 지난 10년간 카레이스키 역사의 한복판인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현장을 10여 차례나 답사했다. 언론인다운 예리한 시각으로 현지답사와 인터뷰를 진행했고, 깊이있는 연구를 위해 문헌조사에도 많은 땀을 흘렸다.
저자는 과거 차르 시대와 스탈린 시대의 고려인 삶에 대해 차별받고 탄압받고 착취당한 피지배 소수민족의 입장에서 천착하고 고발했다. 특히 원동의 고려인 18만 명을 일거에 중앙아시아로 추방한 스탈린 정책의 잔인한 본질을 규명하는 데 주력했다. 스탈린 정권의 고려인 탄압은 세계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의 잔혹한 탄압사였고 인권유린의 부끄러운 인류사였다는 것.
화가 신순남이 그린 ‘레퀴엠-이별의 촛불, 붉은 무덤’ 시리즈는 강제이주의 상처로 죽어간 수많은 고려인의 비극을 장엄한 파노라마로 형상화한 걸작이다. 고려인들은 피카소의 ‘게르니카’나 ‘한국에서의 학살’을 연상케 하는 이 그림을 통해 무려 1만6000명으로 추정되는 강제이주 도중 사망자의 비극을 생생하게 추체험하고 있다.
하지만 고려인에 대한 탄압의 역사는 강요된 침묵 속에 묻혀 버린 것이 너무 많았다. 그들의 참담한 역정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소련 고문서의 비밀이 해제되면서부터다.
저자는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에서 고려인에 관한 많은 자료가 발굴되고 재해석돼 잃어버린 역사의 복원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고려인 사회의 이 같은 축적에 한국 사학계의 연구, 저자의 개인적인 연구결과 등을 종합해 고려인 150년사에 관해 총체적인 정리를 시도한 것이 이 책이다. 역사의 교훈을 기억하는 민족이라야 진화(進化)하고 영생(永生)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신념이다.
고려인들은 시련을 꿋꿋하게 견뎌냈고, 중앙아시아의 중추적인 소수민족으로 성장했다. 중앙아시아에 정착한 고려인들이 재기에 성공한 요인 중 하나가 ‘고본질(또는 고본지)’이라는 특이한 임차 농업 기술이었다.
고본질에서 ‘고본’은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하는 사업에 각각 내는 밑천을 뜻한다. ‘질’은 무슨 행위를 뜻하는 우리말 접미사 질에서 나온 것이다. 책에 따르면 고본질에 나서면 1년 중 8∼9개월은 가족과 떨어져 황량한 들판에서 지내야 했다. 투기성이 강한 사적 이익추구기업이었지만 고려인들은 기꺼이 그 위험을 감내했다. 저자는 고본질로 백만장자가 된 신 아나톨리를 인터뷰하기도 했다.
아울러 이 책은 고려인의 1920년대 친일 행적, 광복 후 북한 건국 참여와 김일성에 의한 숙청, 소련 붕괴 이후의 국가별 재이주 상황과 2000년대의 재기 노력 등을 드라마틱하게 되살려냈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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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유라시아 고려인…잔인한 탄압도 그들을 꺾지 못했다 (매일경제. 2013. 2. 25) |
관리자 |
2014.08.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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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유라시아 고려인…잔인한 탄압도 그들을 꺾지 못했다
‘까레이스키(고려인)’.
1990년대 중반 러시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한 한인들의 삶을 다룬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 사상 최초로 러시아 유민사를 다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이들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즈음 한 권의 책이 나왔다. 유라시아 대륙에 흩어져 살고 있는 50만 고려인의 150년 역사를 개괄한 역사서다. 언론인으로 평생을 살아온 저자가 지난 10년간의 현지답사와 연구를 토대로 집필했다.
1860년대 연해주로 건너가 정착하는 과정부터 1937년 강제 이주를 당해 중앙아시아로 쫓기는 수난기, 해방 후 북한 건국 참여와 김일성에 의한 숙청, 소련 붕괴 이후 재이주 상황과 2000년대 역동적인 재기 노력 등이 모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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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여는 책 | ‘유라시아 고려인 - 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 150년’] 한국인도 조선인도 아닌 그 이름 ‘고려인’ (내일신문. 2013. 1. 11 / 19면) |
관리자 |
2014.08.19 |
899 |
[주말을 여는 책 | ‘유라시아 고려인 - 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 150년’]
한국인도 조선인도 아닌 그 이름 ‘고려인’
중앙아시아 사람들은 기억의 힘을 믿었다. 그 힘은 전설 속에 형상화되었다. '만쿠르트'의 전설이 그것이다. 정복자들은 포로들의 머리에 말가죽을 씌워 머리카락이 거꾸로 자라 기억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게 된 노예, 그것이 만쿠르트였다.
그런데 "스탈린 시절 고려인들은 '만쿠르트의 삶'을 살았다고 말한다." 중앙아시아에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은 이 전설 속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보았다. 이 책은 이렇게 부연한다. "고려인들은 뿌리에 대한 기억을 상실하고 오직 소비에트 시민으로만 살아온 자신들의 존재를 만쿠르트에 빗댄 것이다."
그러나 기억의 상실, 정체성의 상실은 유라시아 대륙에 흩뿌려진 고려인들의 몫만은 아니었다. 한반도에 살아온 우리들의 기억도 마찬가지로 파편화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의 중요한 일부, 그렇지만 의식의 파편 저 어느 구석에 먼지를 쓰고 버려진 조각들을 다시 그러모아 하나의 모습으로 그려내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원로언론인 김호준 선생이 지난 10년의 시간을 쏟아 넣은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이 책을 이렇게 시작한다. "이 책은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에 흩어져 살고 있는 50만 고려인의 150년 역사를 개괄한 통사(通史)다. 한국의 역사학계는 지금까지 '카레이스키 통사', 즉 유라시아 고려인 통사를 내놓은 적이 없다."
그런데 우리말 '통사'는 양식으로서의 통사, 거기서 의미가 끝나지 않는다. 역사의 맥락, 그 내용을 물들인 아픔으로서의 통사(痛史)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고려인들의 역사적 진실을 복원하는 차원과 함께 "서술의 초점을 고난과 시련으로 점철된 고려인의 한 많은 수난사에 맞춘 만큼 아플 통자 '통사'로 보는 것도 좋겠다"는 지은이의 인식이 제시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 책의 주인공은 '고려인'이다. 어쩌면 이 호칭의 내력 그 자체에 지은이가 '디아스포라'라고 규정한 사람들의 운명과 역사가 응축돼 있는지도 모른다. 2차 대전 이후 분단된 한반도에 살아온 사람들이 스스로를 불렀던 '한국인'도 '조선사람'도 아닌 제3의 명칭을 찾아야 했던 한 무리의 사람들, 자신들을 '고려인'으로 구별해 명명해야 했던 사람들의 아픈 역사가 이 책이다.
어쨌든 통사의 피륙을 짜기 위해서는 우선 시대 구분이 필요하다. 유랑을 거듭했던 고려인의 삶을 근원적으로 규정했던 네 차례의 대이주가 자연스런 단락을 제공한다. 통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큰 그림이 거기에 드러나는 것이다. 그들이 살았던 역사적 무대에 따라 고려인에 대한 명명법도 달라지게 마련. 지은이의 설명을 따라가 보자.
그 첫 번째는 한반도에서 두만강 건너 러시아 연해주로의 이주다. 그러나 그것은 "이주라기보다는 19세기 조선의 기근과 봉건적 탐학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주'였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이렇게 '연해주 고려인'은 탄생했다.
두 번째는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자행된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다. "연해주 고려인을 단절된 지역으로 추방해, 20세기의 디아스포라로 전락시킨 통한의 이주다." 히틀러 독일에서 화물열차에 실려 죽음의 땅에 실려 간 유대인들의 운명을 연상시키는 집단적인 비극을 통해 '중앙아시아 고려인'이 등장했다.
세 번째는 1953년 스탈린 사후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에게 자유여행이 허용된 때다. 젊은 고려인들이 교육이나 직업적인 이유로 슬라브 문화권인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지를 향해 스스로 재이주를 선택했다. 고려인들의 생존무대가 서부러시아까지 확산된 것이었다. 드디어 이 책의 제목이 되는 '유라시아 고려인'이 성립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1991년 소련 붕괴 후 민족주의 선풍에 밀려 약 10만 명의 고려인이 다시 유랑의 길로 접어들었다. 중앙아시아 민족주의가 진앙인 이 대이동은 대부분 러시아행 재이주로 결말지어졌다.
그러나 이런 단조로운 요약은 이 책의 풍부한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지은이는 젊음을 취재현장에서 보낸 저널리스트로서 학문적 접근보다 저널리스틱한 어프로치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술회하고 있지만, 그것은 동시에 역사적 사실의 메마른 전달이 아닌 생생한 현장, 가슴으로부터의 서술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가령 곳곳에 마련된 인터뷰 기사들이 전달하는 현장성. "필자가 2004년 7월 카라콜에 있는 작은 아파트로 류드밀라를 찾았을 때 94세의 그녀는 노쇠하고 피로한 기색이 역연했다." 이어 연해주 고려인의 리더로 일제에 의해 처형된 그녀의 아버지 최재형 못지않게 기구한 삶을 살았던 그녀의 형제자매가 겪어야 했던 고난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뒤따른다. 비극의 큰 그림에 매몰된 개인들의 고난이 세밀화의 구체성을 더한다.
지은이는 사학자가 아닌 언론인이 유라시아 고려인의 통사에 '도전'한 것에 대해 "이 무모함에 학계가 어떤 평가를 내릴지 두렵고 궁금하다"고 말한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전문적인 평가가 어떻든 같은 언론인으로서 그와는 반세기 이상의 지인인 나로서는 그가 "지난 10년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각국에 대한 10여 차례의 현지답사, 관계자 면담, 문헌연구 등에 많은 땀을" 흘린 그 노력에 대해 우선 경의를 표하고 싶은 심정이다. 특히 일탈과 조로의 사례로 넘쳐나는 우리 언론계의 현실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제 정리해 보자. 우리는 왜 고려인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가? 우선 이런 대답이 가능하다. 구한말과 일제 때 고려인들은 구국 의병활동의 선봉에 섰고 이제 조국은, 고려인을 낳은 '어미의 땅'은 "그들에게 '빚진 자의 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또 이런 대답도 가능하다. "그동안 한민족 네트워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것이 고려인이었다. 냉전 종식과 더불어 50만 고려인은 한민족공동체의 범세계적 고리 완성에 참으로 큰 의미로 다가왔다."
그렇다. '검은 상자'로 불렸던 죽음의 열차를 탔던 고려인 화가 니콜라이 신이 벽화 '레퀴엠-이별의 촛불, 붉은 무덤' 시리즈에서 형상화한 눈 코 입이 없는 인물들, 이 역사 속에 뭉개진 고려인의 모습을 되살려 나가는 과제는 여전히 우리 몫이다. 역사는 기억이고, 기억은 오늘을 사는 자의 몫이 아닌가? 이 책을 읽으면서 초현실주의자의 시계처럼 축 눌어붙은 절름발이 역사의 모습이 새삼 안쓰러워진다.
박순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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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디아스포라 150년의 발자취 (연합뉴스. 2013. 1. 7) |
관리자 |
2014.08.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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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디아스포라 150년의 발자취
김호준 著 '유라시아 고려인 150년' 출간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19세기 후반 농경지 부족과 지배층의 수탈로 굶주림에 시달리던 함경도 주민들이 먹고살기 위해 두만강을 건넜다. 새 삶의 희망을 품고 광활한 러시아 땅 연해주에 첫발을 디딘 이들이 오늘날 50만 고려인의 뿌리다.
함경도 13가구가 이주해 연해주 지신허(地新墟)에 최초의 한인 마을이 생긴 1863년부터 현재까지 꼭 150년의 고려인 역사를 살펴본 책 '유라시아 고려인 150년-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주류성 펴냄)가 출간됐다.
언론인 출신의 김호준(70) 전 신문발전위원장은 2002년 우연히 키르기스스탄을 방문한 뒤 고려인에게 관심을 품고 10년간의 현지답사와 연구를 토대로 고려인의 역사를 책으로 복원했다.
고려인의 역사는 끊임없는 유랑의 역사였다.
20세기 초까지 이어진 연해주 이주 이후 1937년 고려인들은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됐다. 당시 스탈린은 고려인 사회가 일본 첩자의 온상이라며 18만 명의 고려인을 중앙아시아로 내몰았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고려인이 숙청, 기근, 질병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1953년 스탈린이 죽은 후 중앙아시아 고려인에게 자유여행이 허용되면서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지로 개별적인 재이주가 한 차례 더 이뤄졌고 1991년 소련 붕괴 후 소수민족 차별과 경제난 속에 10만 명의 고려인이 다시 유랑의 길을 떠났다.
현재 52만3천여 명의 고려인 가운데 러시아 고려인이 21만3천 명으로 가장 많고 이어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크라이나 순으로 고려인이 많이 모여 살고 있다.
책 속에는 고려인의 파란만장한 연대별 역사뿐만 아니라 현재 유라시아 고려인의 현황과 고려인의 문화상도 담았다.
독립운동가 최재형의 여섯째 딸 최 류드밀라, '푸른 눈의 고려인' 니나 할머니, 키르기스스탄 3선 의원 신 로만, 서울 광희동 고려인촌에 살고 있는 박 알렉산드르, 고려인 출신 주한 우즈베키스탄 대사 편 위탈리 등 여러 고려인과의 생생한 인터뷰도 중간중간 수록됐다.
저자는 책에서 "세계 각지의 한인 동포치고 고난과 시련을 겪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 고려인에 비견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한결같이 힘들고 고단한 삶을 산 고려인들은 개개인 모두가 감동적인 인간 드라마의 주역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에게 이제 고려인은 21세기를 함께 열어갈 대륙의 인도자가 되고 있다"고 강조한 뒤 "대한민국이 고려인의 손을 잡아준다면 그들은 또 한 번 성공신화를 만들어낼 것"이라며 고려인에 대한 관심을 당부했다.
555쪽. 3만 원.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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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만 있고 역사책 없는 고려인 그들의 150년 通史이자 痛史죠 (서울신문. 2013. 1. 19) |
관리자 |
2014.08.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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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만 있고 역사책 없는 고려인 그들의 150년 通史이자 痛史죠”
유라시아 ‘50만 고려인’ 역사 정리한 언론인 김호준
2013년은 고려인의 선조들이 두만강 너머 연해주 지신허에 최초의 고려인 마을이 들어서고 대륙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한 지 150년이 되는 해다. 역사는 있지만 역사서는 없는 이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서를 건네주고 싶었다. 다시 일어서려는 고려인들의 손을 잡아주는 계기가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서울신문 편집국장과 문화일보 편집인을 지낸 원로 언론인 김호준(70). 러시아, 아니 유라시아 대륙에 흩어져 사는 50만 고려인의 역사를 정리한 책 ‘유라시아 고려인 150년-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주류성 펴냄)를 냈다. 지난 17일 서울 중구 태평로의 서울신문사에서 만난 신문사 대선배인 저자는 “역사학자가 아닌 한 언론인의 이 무모함에 학계가 어떤 평가를 내릴지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궁금하다”고 했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저자가 고려인에 ‘꽂힌’ 건 2002년 여름 키르기스스탄을 방문하면서부터였다. 한국에서 6000㎞나 떨어진 산악지대에 고려인 2만명이 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들이 어떻게 오지 중 오지인 이곳까지 흘려들어왔고, 무얼하며 먹고사는지 등이 궁금해졌다. 키르기스 고려인에 대한 궁금증이 10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면서 유라시아 전체의 고려인으로 확대됐다. “그동안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에만 15~6차례 현지답사를 다녀왔다. 현지에서 인터뷰한 고려인만 100명가량은 된다”고 했다. 고려인 이주와 관련된 자료는 보이는 대로 모았다.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옛 소련 고문서의 비밀이 해제되면서 빛을 본 고려인 강제이주에 대한 기록들이 책 쓰는 데 도움이 됐다.
“러시아에도 한국에도 고려인에 대한 제대로 된 역사책 한 권이 없더라. 기가 막혔다. 소련의 민족사 교과서는 수천 명밖에 남지 않는 소수민족까지 다루면서 40여만명에 이르는 고려인에 관해서는 한 줄도 적지 않았다. 해방 후 북한정권 창건에 참여해 건설상까지 지냈다가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간 역사학자 김승화가 1960년대에 출간한 ‘소련 한족사’도 강제이주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할 때는 저절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는 “이 책은 고려인의 150년 역사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별로 개괄한 통사(通史)인 동시에 고려인의 한 서린 수난사인 통사(痛史)”라고 정리했다.
저자는 고려인의 역사를 크게 4차례의 대이주를 경계로 정리, 복원했다. 첫번째는 1860년대 조선 땅에서 살 수 없어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로 이주한 것이다. 두번째는 1937년 일본의 러시아 진출 교두보 역할을 할 것이 두려웠던 스탈린에 의해 18만여명이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내몰리며 삶이 뿌리째 뽑힌 시기다. 이어 1953년 스탈린이 죽은 뒤 자유여행이 허용되면서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지로 개별적인 재이주가 이뤄지며 고려인은 1차 전성기를 맞는다.
하지만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15개의 민족공화국으로 분리 독립하면서 경제난과 차별정책에 몰려 10만명의 고려인이 다시 유랑길에 올랐다. 저자는 연해주 고려인을 다룬 앞부분의 상당 부분을 항일 독립운동에 할애했다. 또 2차대전 당시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왔다 남은 사할린 고려인도 빠뜨리지 않고 다뤘다.
저자는 “‘한과 슬픔의 역사’인 고려인의 유라시아 이민사를 정리하면서 방점을 찍고 싶었던 것은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좌절하지 않고 시련을 기회로 만드는 강인함과 개척 정신이다”라면서 높이 평가했다.
150년 고려인의 발자취를 530쪽에 정리해놓았는데도 술술 읽힌다. 저자의 저널리스트로서의 30년 경험이 녹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10여차례의 현지방문에서 만난 독립운동가 최재형의 여섯째 딸 최 류드밀라를 비롯해 키르기스스탄 3선 의원 신 로만, 최장수 각료 김 니키포르, 탈영한 북한군 대위 출신 김수봉 부부, 연해주로 이주한 최 니키타, 고려인 출신으로 16년째 주한 우즈베키스탄 대사를 맡고 있는 편 위탈리 등과의 인터뷰와, 이들로부터 들은 일화 등은 기존의 역사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대목들이다. 고려인 작가들의 시와 화가의 작품, 수집한 다양한 사진 자료들도 또 다른 볼거리다.
현재 52만 3000여명의 고려인 가운데 러시아 고려인이 21만 3000명으로 가장 많다. 이 가운데 1만명의 고려인이 한국에 체류하고 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개척자 정신이라는 DNA를 갖고 있는 고려인들이야 말로 우리(한국)에게 21세기를 함께 열어가야 할 대륙의 인도자가 되고 있다”며 고려인들에 대한 관심을 당부했다.
김균미 문화부장 km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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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아야만 할 고려인들의 아픈 역사 |
와죽 |
2014.0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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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련 영토를 중심으로 유라시아 대륙에 흩어져 살고 있는 ‘고려인’에 대해 우리가 인식하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90년 소련이 붕괴와 냉전의 종식이 계기가 되어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와 통교하게 된 후부터 그들의 존재가 한국의 일반인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 책은 이른바 ‘고려인’이라고 하는 우리 동포들의 150년이라는 부침과 영욕의 역사를 전면적으로 개괄한 통사(通史)이며, 더불어 통한의 역사(痛史)라고 할 수 있다.
가난과 지배층의 수탈을 피해 연해주로 흘러 들어가서 정착한 것이 대략 1860년 정도라고 한다. 그 후 조선이 일제에 나라를 잃게 되어 독립투쟁을 위해 연해주로 독립투사들이 모이게 되어 그야말로 가열찬 독립운동을 하게 된다. 유명한 안중근 의사나 홍범도 장군, 헤이그 밀사 중 한 사람이 이상설 등이 바로 그들이다. 또한 척박한 땅을 온몸으로 개간하고 농사만 지을 줄 아는 가난한 동포들도 모두 조국의 독립을 위해 뛰어들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현재의 우리나라가 연해주와 고려인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느껴야 한다.
고려인들은 조국을 잃고 타국에 기생하는 처지에서 국제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릴 수밖에 없었고, 그 와중에 셀 수도 없는 생명이 무고하게 스러질 수밖에 없었다. 차르 시대에는 러시아와 일제의 사이에서, 볼셰비키 혁명의 와중에서는 홍군과 백군의 사이에서, 그리고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결정적으로 1937년에 스탈린에 의해 단행된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는 연해주 고려인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했다. 그들은 맨몸만 기차 화물칸에 싣고 중앙아시아 황무지 벌판에 버려졌다.
하지만 그들은 거기에서 놀라운 생명력과 창의력을 발휘하며 그곳 원주민들이 결코 이룰 수 없는 농업을 일으켰다.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에 정착하여 생산하는 농업 생산물은 구소련의 농업생산력의 제고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것이다.
그후 냉전기에 얼마간 안정된 생활을 하던 고려인들은 소련이 분열되어 민족에 따라 여러 나라로 분리되면서 또 다시 뿌리를 잃고 다시 부표(浮漂)하게 되었다. 물론 이 지구상에서 적응력을 따지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우리 민족 고려인들은 다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의 상황에 맞춰 적응해가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전문적인 역사학자는 아니다. 하지만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10여년 이상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각지를 찾아다니며 현지답사를 하고, 관련 인물들과 인터뷰를 하고, 많은 사료를 모아서 ‘고려인의 역사’를 충실하게 엮어내었다. 책 뒤에 묶여있는 수많은 참고문헌만 보더라도 저자가 얼마나 이 책을 쓰기 위해 고심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고려인들의 역사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연해주를 중심으로 한 독립투쟁사의 한 면도 읽을 수 있고, 중간에 끼워져 있는 고대와 중세에서 우리 민족의 중앙아시아 관련사를 배울 수도 있다.
누구나 현재 이 세계는 글로벌 경제 체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 체제라는 것이 무조건적인 개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니 어쩌면 글로벌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우리’라는 닫힌 개념이 더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대륙 곳곳에서 자리하고 있는 고려인 50만 명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한반도 남북을 연결하고 고려인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 퍼져있는 한민족을 아우르는 ‘한민족 네트워크’의 구성은 미래 우리 경제 발전의 엄청난 저력을 발휘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재외 동포들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자세를 길러야 할 것이다. 책 안에서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 취업하기 위해 온 고려인 김 갈리나가 말하는 한국 사람에 대한 불만은 이 땅의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참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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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 150년 |
khr0937 |
2014.0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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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대기 힘든 나라로 강제이주하게 된 역사를 기자의 눈으로 쓴 책입니다.
고려인 사회는 민족의 이름에서 한국과 조선을 배제하고 고려인이라고 말한다. 남한도 북한이
아니라는 고려인의 고민을 보여준다. 해외동포들을 보면은 조선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전혀 다른 고려인이라고 표현을 해서 놀라웠다.
조선의 연해주 이주는지신허에 최초로 고려인 마을이 들어선 1863년설이 유력하다고 생각한다.
한명에서 가족에서 또는 마을전체가 아주하기도 했다. 연해주를 가면은 잘살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차별은 있었다. 세부류로 나뉘는데 1부류는 조세, 노역, 군역의 의무를 이행하고 상투와 댕기를
자르게 했다. 2부류는 매년 러시아 비자를 발급받도록 했다. 비자발급비용이 두어달월급만큼 든다.
3부류는 여권과 비자없이 불법적으로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런상황인데도 인구가 계속해서
늘어난 이유는 조선에서 일제의 수탈로 먹고 살길을 읽은 사람과 연해주는 쌀 생산의 급격한 증가가
외부 노동력의 유입을 필요로 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나름 기틀을 잡고 있었던 고려인들을 소련공산당은 강제이주를시작했다. 병원에 입원하고 친척집에
있던 사람들까지 단1명까지 놓치지 않고 말이다. 그 속의 잔인한 진실은 소련 내 모든 고려인을 추방
대상으로 시키도록 되어 있으며 고려인을 일본스카이로 몰기도 하고, 이주자에게 사유재산을 가지고
간다고 했지만 최소한의 식량및 옷가지밖게 가지고 갈수 없었고 부동산같은 재산들의 보상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이주민들의 기차를 검은 상자라 불리웠다.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고 또 최종장소를 말해주지 않고
또 그때 상황에 따라 변경되어서 가족간의 생이별로 이어졌다. 내려진 장소는 허허벌판에 아무것도
없는 갈대밭이었다. 그래서 땅굴파고 살수밖에 없었다.
"잉기까지 오는데 한 달 넘어 걸렸지. 짐승이 실는 기차에 한 바곤(객차)에 네 가족씩 탔지.
춥지. 배고프지 해서 애들은 죽고, 노인들도 마이죽었지. 기차가 스면 부모들은 죽은 자슥들을
땅에 묻고... 또 기차 타고 갔지. 어디매 가는지는 아무도 몰랐지. ... 처매 이기는 전부 깔밭
(갈대밭)이랬지. 그래 손으로 호매로 밭을 매고 물길 내고... 갈로 집을 지었지. 정말 짐승이처럼
살았지. ... 인잔 일없소(괜찬소)"
강제이주를 당한 이후에도 제한을 받았다. 국경지역으로 이주를 금지당했고, 도주 방지를 위해 기차에서
먼 곳으로 이주했고, 관리하기 쉽도록 천가구 이하로 제한했다. 고려어를 배우지도 못하게 했다. 도망
보다는 먹고 살기 힘들어서 고려인의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고본질(여러사람이
공동으로 하는 사업이라는 을 말하여 농업을 기본으로 했다) 이라는 공동경작으로 양파나 수박을 농사
지었다. 집을 떠나 가족들을 보지 못하기는 하지만 돈을 많이 벌었다. 투자비의 3-10배까지 벌었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고려인의 역사는 공연장에서도 지명에서도 화폭에서도 모습을 감추었다.
고려인의 기구한 이주인생은 한반도에서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로 이주에서 부터 독재자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에서 1953년 이후 교육이나 직업저인 이유로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지로
개별적 재이주이다. 그 이후는 1991년 소련붕괴 후 약 10만명의 고려인이 다시 유랑의 기로 접어들때이다.
대부분 러시아 행 재이주로 결말이다.
"나의 부친은 (원동의) 하바로프스크 시에 묻혀 있다. 어머니는 (러시아) 크림 주 엠파트라 시에,
외할머니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주미르자 촌에, 친할아버지는 연해주 수하놉카 촌에, 외할머니는
타슈켄트 주 사마르스코예 촌에, 그리고 친할머니는 카자흐스탄의 침켄트 시에, 형님은 연해주
크라스키노 촌에 안치돼 있다. 그러니 이 고인들을 누가 모셔서 성묘를 할 것인가. 기가 막힐 일이다.
악마의 나라에서만 이 같은 일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몰아낸것도 아닌데 당연히 살아도 되는 내 나라에서 세계 이곳저곳으로
떠돌아 살아야 하는 나그네 인생이 안쓰러웠다. 적응했다고 말하면서 다른 나라로 이주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 고려인들 언어나 문화는 러시아향이 나지만 마음은 그때의 조선을 그리는 것이 아닐까 한다
러시아와 조선의 문화가 공존하는 그곳에 화투라는 문화가 끈질기게 남아 있다는 것을 보고서 재미있었다
정체성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한민족이라고 절반이상이 응답했다는 글을 읽고서 몸은 편하게 읽었지만 마음만은
가시방석이었다. 내가 모른는 친천들일 그곳에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무섭기까지 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또 고려인들이 한국으로 들어오고 싶다면 방안을 마련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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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고려인, 150년 |
현식님 |
2014.0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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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힘이 약하다면 누가 피해를 볼까? 구한말 우리역사를 되짚어본다면 알 수 있다. 조선시대 후기 불안한 국제정세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 정치적 갈등이 고조되면서 많은 백성들은 먹고 살기 위해 나라를 떠나야 했다. 만주로 연해주 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주했다. 특히 연해주로 이주한 백성들의 발자취는 동서냉전의 시대적 기류 때문에 그들과 우리는 수 십 년간 아니 백 년 가까이 서로의 존재를 잊고 살았는지 모른다. 이제 시대가 변해가면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끊어진 정서적 동질감을 잇는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
현·근대사에 우리 민족은 많은 고난을 겪었다. 일제침략으로 국운이 기울고 주변 강대국들은 마음껏 우리민족을 유린했다. 이 때문에 백성들은 나라를 등지고 이곳 저곳 낯선 땅에서 방황하게 된다. 기록에 의하면 1860년대에 조선인들이 처음 러시아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고려인이라고 부르면서 민족의 정체성을 잊지 않았다. 최초 이주민은 먹고 살기 위한 방편으로 이후에는 일제 침략에 맞서 독립을 위한 전초기지로 활용되었다. 이렇듯 만주나 연해주는 우리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곳이었다.
그러다가 소비에트 연방이 탄생하면서 고려인들은 다시 한번 고난의 역사가 되풀이된다. 소비에트 연방에서도 나라 잃은 백성들을 반겨줄 리가 만무하다. 많은 지도자들이 숙청되고 러시아국경지방에 일본진출을 우려하던 소비에트 연방은 고려인을 일본의 앞잡이로 생각하여 지속적인 이주정책의 희생양으로 삼았다. 소비에트 연방의 내전에서 수많은 공헌을 했음에도 그들은 러시아인으로부터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으며, 새로운 개간지를 일구어내면 러시아인에게 빼앗기는 일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우리민족의 근면 성실함으로 끈질기게 버티며 살아왔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고려인의 삶은 비참하고 비통했다. 지금껏 고려인은 구소련 지역에서 살고 있다. 나라의 약함으로 나타난 불가피한 불행이지만 이들은 극복하여 나름대로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그러면서 이들의 정체성 고립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화되었다. 이제는 우리가 고려인의 정체성을 깨우는데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며 이들과 교류를 더욱 활발히 하여 경제적 자립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관계 발전을 위한 초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삼국시대까지 우리 역사의 발상지이며 우리땅이라 자부하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낯선 땅이 되어버리고 이곳에서 뿌리를 내린 고려인과 한반도에 사는 우리가 이제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하루빨리 찾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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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 150년 |
욱이 |
2014.0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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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의 이야기를 다루어서일까요?
책 두께가 상당했습니다.
이 두께감에 실린 이야기의 무게는 어떨까...
궁금하기도 하면서 과연 잘 읽을 수 있을까? 걱정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디아스포라, 흩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
유라시아 전지역에 걸친 고려인이 총 50만명이 훌쩍 넘는다고 하니..
많은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얼어붙은 강을 건너, 살기 힘든 북쪽의 땅에서 벗어나 두만강을 건너 우수리 강 유역에 정착한 우리 조선 사람들.
그 이동인구가 늘어나면서 서서히 러시아 지역에 이주해서 사는 한국인이 늘기 시작합니다.
오로지 살기 위해서.
그리고 계속된 이주.
처음엔 생활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한 이민이었다면, 그 후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 이동의 모양도 변형됩니다.
나라가 없어진 다음엔 독립운동가들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와 일본에 의해 수많은 탄압도 받게 되구요.
그러다 1937년 스탈린에 이ㅡ해 강제 이주로 인해 중앙아시아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다시 소련이 붕괴되면서 러시아, 우크라이나는 물론 수많은 나라에 퍼져서 살고 있는 고려인.
연해주, 사할린 등 그나마 많이 아는 지역 외에도
.벨라루스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나라의 이름도 잘 알지못하는 유라시아 지역이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이들 중에서는 무국적의 고려인들도 있지요.
이들의 이야기를 저자의 현지 답사와 연구를 통해서 만들어진 책입니다.
그래서 인가요? 내용 또한 굉장히 방대합니다. 양이 많은 만큼 내용 또한 세부적으로 들어갑니다.
왜 조선인이라 안하고 고려인이라고 할까? 라는 의문점을 가지고 보다보니 앞부분이 많은 집중이 되었습니다.
갈수록 조금 떨어지는 면이 없지않아 있어요.
많은 사진 자료들과 인물 사진들이 책 속의 내용을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해줍니다.
자신의 의지로 시작된 이주에서 결국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의지 없이 떠돌아야 했던 이들.
자신의 나라가 아닌 곳에서 사는 것도 서러운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살아왔던 고려인들의 삶이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종종 TV에서도 이 책에 언급된 지역의 우리 고려인들의 모습을 보여줄때가 있는데요.
그때도 왠지 완전 다른 나라를 보는듯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왠지 끌리는 느낌도 받거든요.
같은 민족인데 언어도 다르고 생활방식도 다르고 어떤때는 생김새도 달라보여서인지 낯설면서도 친숙한 그런 묘한 느낌이 들더라구요.
디테일한 구성 때문일까요?
관심이 있는 부분은 몰입해서 읽혀지지만 조금 복잡해지고 잘 안 읽혀지는 부분도 분명 존재했습니다.
조금 더 간결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소련이 없어졌으므로 러시아에서 태어나 우즈베키스탄에서 산다고 해야겠지요. 그리고 러시아인과 우주베크인 사이에서 자랐기 때문에 절반은 러시아인이고 절반은 우주베크인이라고 해야겠지요. 나이게 한국적인 것은 별로 없어요. 눈 모양과 식습관만 한국적이죠." (P514 中)
러시아어에 우주베크어, 한국어, 영어 등 세대별로 4개의 언어를 구사해야 하는 공동체.
150년간 떨어져 살면서 모든 것이 한인과는 달라진 그들.
그래서 신종 유라시아인이라고 부르면서 새로운 민족으로 분류되는 고려인.
한민족적, 러시아적, 소비에트적, 중앙아시아적 등 많은 문화가 혼재되어 있습니다.
제 나라에서 살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면서 사는 삶이란...
분명 힘들 삶이자 고단한 삶이자 어려운 삶입니다.
150년.
길다면 길고 어떻게 보면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요.
이 사이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떠나 다른 지역에서 이렇게 아픈 역사로 살고 있었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게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합니다.
게다 결국 다름을 인정하고 그 인정과 동시에 그들과 어떻게 융화해 갈 것인가 숙제도 많이 있고 디테일한 설명과 많은 인터뷰, 각종 사진 자료나 내용들이 좀 어렵긴 해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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