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류성출판사 |
 |
|
|
|
|
|
|
 |
 |  |  | |
|
광복 70주년,
광활한 만주벌판에서 외치는 겨레의 함성을 듣는다
‘두만강아리랑은 일본제국주의 침략자들에 대항하여 총칼을 들고 싸웠던 항일독립전쟁(抗日獨立戰爭)의 기록이다.
두만강아리랑'은 친일반역자들과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훼손되고, 사라지고, 조작되어진 항일독립전쟁의 역사를 찾아내 올곧게 기록한 답사기이며, 지난 10여 년 동안 만주지역의 항일유적들을 답사하며 보고, 듣고, 느꼈던 사실들을 진솔하게 써내려간 독립전쟁 성지순례기(聖地巡禮記)이다. '두만강아리랑'은 광복 70주년이 되는 올해, 지난 70년 동안 역사 지우기에 의해 사라졌던 역사, 잊혀져갔던 역사를 다시 길어 올리는 두레박이며, 역사 바로 세우기의 지렛대라고 할 수 있다. 항일독립투쟁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분석, 각종 자료와 증언, 작가적 통찰을 담은 이 책은 항일유적답사를 떠나는 분들을 위한 자세한 지도와 수많은 현장 사진을 수록하고 있다.
최범산의 항일 유적 답사기
'두만강아리랑'은 지난 십여 년 동안 만주지역의 항일유적들을 답사하며 보고, 듣고, 느꼈던 사실들을 진솔하게 써내려간 독립전쟁 성지순례기(聖地巡禮記)이다. 작가는 중국 동북지방의 항일유적을 답사하며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고, 때로는 신변상의 위험에 노출되기도 했다. 중국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동북공정(東北工程)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 동북지방 주민들은 작가의 유적답사를 극도로 경계했고, 때로는 노골적으로 방해하기도 했다. 또한 광대한 만주지역에서 유적들을 찾아다닐 때마다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경제적 어려움은 작가 개인의 힘으로는 극복하기 힘들 때가 많았고, 험준한 산골짜기 유적지를 찾지 못해 산중을 헤매다가 체력의 한계로 인하여 낯선 타국에서 몸져누웠던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나 작가는 멈추지 않았다. 중국정부의 동북공정이나 도시개발 등으로 항일유적들이 언제 훼손되고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작가의 발길을 재촉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무리한 일정을 강행하며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겨울에 눈보라치는 유적을 찾아갔다가 눈길에 갇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작가를 힘들게 만들었던 것은 지인들의 무관심과 주변인들의 냉소, 비웃음거리가 되었을 때였다.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후회했지만, 결코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항일독립전쟁의 유적에는 조국과 민족을 사랑한 사람들의 숭고한 발자취가 있었고, 암울한 시대 간고한 투쟁 속에서도 결코 절망하지 않았던 독립투사들의 기상이 서려 있었다. 대한국인의 기개와 용맹이 빚어낸 불굴의 정신, 극한적 시대상황 속에서도 찬연하게 빛나는 민족혼불이 있었다. 어찌 하찮고 사사로운 어려움을 핑계로 항일독립전쟁 유적답사를 멈출 수 있었겠는가
|
|
|
 |
 |  |  | |
|
|
| 번호 |
평점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수 |
|
| 3 |
 |
항일독립전쟁의 터전을 찾아서 |
책은 사랑이다 |
2016.03.24 |
1191 |
대단한 책을 만났다. 나는 정말 이런 책을 기다렸다. 항일독립투사들의 이야기들을 마음에 두고 있던 찰나 두만강 아리랑이라는 책을 만났다. 읽으면서 마음이 뜨거워졌다. 소설이 아닌 우리 역사에서 벌어졌던 슬픈 일이었기에 그러한 세상에 태어나 살아내야만 했던 시간들은 그 분들에게 치욕과 슬픔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부 뿐 아니라 민간단체들이 적극적으로 한국사에 대한 바른 이해와 앎을 제공해 주어야 하고 가정에서 이런 좋은 책들을 사서 비치하여 아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정에서 학교에서 부모와 소통하는 독서토론이나 모임을 갖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식민사학의 왜곡된 한국사의 난립과 친일들의 한국사 폄훼이다. 이것을 잘 구별하여 책을 선정하고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국정교과서를 그리 반대하는 것이다. 역사를 독립 운동가 관점으로 보아야 당연한 것인데, 해방 70여 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식민사학계의 입김속에서 왜곡이 된 부분이 많이 있음은 정말 안타까울 뿐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나치의 지배를 4년간 받았던 프랑스는 나치인 프랑스인을 50만명을 처벌하였고 사형시킨 인원은 1만명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곳곳에 친일파 매국노들이 보이지 않게 득세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제에서 해방이 되었지만 식민사관의 지배정신이 남아있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저자 최범산은 이 책을 통해 항일독립가들과 그 유적들을 살펴보며 하나하나 우리 역사의 진실된 장면들을 보여준다.
작년은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지 70년이 된 해였다. 우리도 모르게 식민사관의 내용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아직 이 나라의 친일 청산은 현재 진행중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하셨듯 우리 모두 한국사를 비롯해 역사를 바로볼 줄 아는 안목을 키워나가야 한다. 그리고 행동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친일청산에 앞장서야 하지만 아버지가 친일과 관련이 있어 차마 못하는 것인지 안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국정교과서를 만들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 의도는 조금은 알것도 같다. 아무튼 이 책은 너무나 감격적인 책이며 자료로써 충분히 소장하여 볼 수 있는 보물과 같은 책이다. 이런 책이 가정마다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우리나라는 자기계발 서적이 당연 판매지수가 높은 나라다.
아니면 혜민스님이나 기타 긍정적인 책들이 잘 팔린다. 이런 책들을 읽는 것을 뭐라 말하는 것이 아닌 그저 무한긍정하며 사회와 정치에는 무관심하여 비판적인 사고보다 긍정하라는 메시지를 강요하면서 불의한 일에도 아무말을 못하고 그저 권력자들에게 끌려가는 인간 시민들이 많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우리는 이 책 두만강 아리랑을 무조건 읽어야 한다. 이와 관련된 한국사 뿐 아니라 역사, 문학, 정치, 사회, 복지 분야의 책을 독서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일제치하에서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던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공유하고 연대해야 한다.
안중근에 이어 윤동주를 읽을 때 가슴이 정말 뜨거워졌다. 특히 나는 윤동주를 좋아한다. 그의 젊은 날은 우리가 아는대로 어둠의 일제식민지 시대였다. 아쉬운 것은 생을 더 살았다면 광복을 보고, 주옥같은 시들을 많이 썼을텐데 라는 생각 뿐이다. 어떤 이는 일제치하에서 윤동주의 시도 나왔을 것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아쉽고, 마음이 아프다.
왜냐하면 광복을 불과 7개월 앞두고 질병과 고문 후유증으로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윤동주 시인이 태어날 때 한국은 일본 왜의 식민지였다. 그래서 더욱 아쉽고 가슴이 아픈 것이다. 그의 나이 28세. 너무나 짧은 생이었지만 그가 남긴 정신은 우리 마음속에 영원할 것이다.
이 책은 뿐만 아니라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의 유적지를 찾아 그 업적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북간도 한인대학살의 참상의 현장을 보게 될 것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이런 책은 보물과 같은 책이다. 십여년 동안 연구하며 발로 뛰면서 사진과 글을 충성스럽게 담은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항일독립전쟁의 기록물들을 사진과 함께 저자의 설명으로 들으니 더욱 가슴이 매인다. 그리고 용감하게 싸우고 희생하신 선배님들에게 감사를 드릴 뿐이다.
|
|
|
| 2 |
 |
서평 - 두만강 아리랑 |
별빛천사 |
2016.03.24 |
1154 |
일제 식민지의 역사는 슬픔과 고통으로 점철된 뼈아픈 역사다. 이를 벗어날 수 있었고 지금의 발전된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조상들의 항일독립투쟁의 덕이다. 자주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애국선열들의 피와 땀, 눈물의 대가로 우리는 독립한 나라에서 지금의 풍요와 혜택을 누리고 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후손들은 이를 얼마나 기리고 또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나 스스로 자문하더라도 부끄러운 수준이다. 일본 제국주의 침탈과 억압에 맞섰던 조상들의 독립정신은 우리 겨레의 혼이며, 독립전쟁의 역사와 순국선열들의 발자취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진실이다.
이 책은 저자가 십여 년 동안 만주지역의 항일유적지를 돌아보며 직접 보고 듣고 느꼈던 생생한 기록과 현장사진을 바탕으로 엮은 것이다. 저자의 통찰과 분석, 수많은 자료와 증언 등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독립전쟁 성지순례기라 칭할 수 있는 답사기다. 무관심으로 인한 방치와 중국정부의 동북공정과 도시개발 등으로 항일 유적들이 훼손되고 사라져가고 있는 시점에서 이 책의 기록들은 더 의미가 있다.
이 책에는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며 특파대장이었던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던 하얼빈에서부터 시작해서 애국시인 윤동주 시인의 발자취가 담긴 북간도 용정, 연합한 독립군 부대가 일본군을 물리치고 큰 승리를 거둔 항일독립전쟁의 첫 번째 대첩인 봉오동 전투의 유적지, 김좌진과 홍범도, 서일, 안무, 이범석 등 항일명장들의 활약으로 일본군을 격퇴시켰던 청산리 전투의 발자취가 담긴 북로군정서 유적, 북간도 한인대학살의 유적지, 북간도 항일독립전쟁의 흔적이 담긴 만주벌, 단동, 연변, 두만강 등에 이르기까지 만주지역 북간도 일대의 항일유적과 자료들, 인물들과 역사 이야기들이 디테일하면서도 생생하게 담겨있다.
최근 감상했었던 영화 ‘암살’의 전지현이 맡았던 캐릭터의 모델이었던 여성 항일투사 남자현 열사에 대한 실제 이야기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항일투쟁 이야기는 영화적 구성의 암살보다도 더 굳건하고 치열하게 다가왔다. 영화와 이 책이 아니었다면 남자현 열사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면 후손으로서 부끄럽고 죄송할 따름이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먹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정신에 있다.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지느니라.’ 그녀가 아들에게 남긴 유언이다. 마지막까지 애국과 독립에 대한 강건한 믿음과 강인한 정신이 느껴진다. 남자현 열사의 묘는 하얼빈의 도시개발로 인해 이장되었지만, 그곳마저도 다시 개발이 되어서 그녀의 묘지는 이제 찾을 수가 없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싸우다가 돌아가신 수많은 순국선열들의 유해조차 봉환하지 못했다는 것이 가슴이 아팠고, 죄송한 마음에 마음이 먹먹했다.
이 책은 항일투쟁의 흔적이 담긴 장소와 유적들에 대한 사진, 저자의 생생한 답사기가 담겨있는 점뿐만 아니라 그동안 몰랐던 수많은 항일투사들의 뒷이야기와 독립전쟁에 대해서 알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덕분에 지루할 틈 없이 술술 읽어나갈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성인들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올바른 역사교육 차원에서도 가치 있는 책이다.
미디어를 통해서 공유되고 있는 수많은 소식들을 접할 때면 상식에 어긋나 보일 정도로 답답한 이야기들을 적지 않게 접하게 된다. 그중에서 유난히 감정을 끓어오르게 하는 소식 중에 하나는 다수가 알고 있는 역사까지도 왜곡과 은폐를 조장하고 이를 이슈화하는 소식이다. 이런 왜곡된 이야기들을 대놓고 이슈화해도 제재하거나 처벌할 법적 제도조차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더욱이 이런 주장들에 앞장서거나 동조하는 사람들 중에 정치인과 역사학자까지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들은 일제강점기를 옹호하거나 조상들의 친일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과거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최근 벌어졌던 이슈를 보면 내 생각이 짧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여전히 권력과 부를 가지고 있는 친일세력들이 많고 그들이 이런 힘을 가지고 현 세대들의 역사관까지 뒤흔들어 바꾸려고 한다. 최근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위안부 합의 이슈 역시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시행 배경과 절차 어느 것 하나 이해와 공감이 가지 않았으며 국민을 설득하고 이해시킬 수 있는 상식적인 선도 없었고 노력조차 없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졸속처리와 부정행위에 이어 강행으로 시행에 들어갔고, 위안부 합의 역시 피해자들의 의견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채 정치인들끼리 자신들의 판으로 활용했다. 관련해서 할 말이 많지만, 정치적 이슈이기도 해서 논하지는 않겠다. 역사적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게 되어있다는 것을 그들이 깨우쳤으면 한다.
독일은 과거 자신들의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그 잔재를 철저하게 청산하려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일본의 역사의식이 독일의 반만 닮아도 지금보다는 한일 관계가 나을 것이다. 역사적 진실은 양보라는 것이 적용될 수 없는 것이다. 인정과 반성을 통해서 진정으로 화합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나 역시 과거의 역사 때문에 명분 없이 무조건적인 반일감정을 세우는 것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지금은 일본이 글로벌 시대에 함께 발전해나가야 할 이웃나라로서의 의미가 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제치하 억압과 수탈의 역사를 부정하고 일제가 사회문화와 경제발전을 이루게 하였다며 식민지 시대가 굴종과 퇴보의 역사만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두고 볼 수는 없다. 더욱이 친일세력들이 이 주장에 동조하고 힘을 실어 민족분열과 대립을 조장하는 기막힌 현실이 지금도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역사가 바로 서야 민족이 바로 선다. 기성세대들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짊어질 모든 세대들에게 잊혀진 역사가 아니라 기억해 할 역사로서 올바른 역사의식을 심어줄 의미 있는 가치로써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
|
|
| 1 |
 |
최범산 "선열들의 항일투쟁역사 무관심 부끄러워해야" |
관리자 |
2016.03.09 |
1212 |
[차 한잔 나누며] 중국내 항일유적 서적 발간 작가 최범산
1920년 10월 즈음, 수백의 장정들이 이동하고 있었다. 마차를 끌고 등짐을 짊어진 채 험한 산을 넘어 쉼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목적지는 백두산 인근. 험난한 여정 끝에 그들, 북로군정서의 군인들은 독립투쟁사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 중 하나인 ‘청산리전투’를 일구어냈다.
“‘북로군정서의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한 달여간의 대이동이었지요.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 그 길을 밟아보면 어떨까요. 일본 정규군을 대파한 대장거의 현장을 걷는다면 얼마나 영광된 일이겠습니까.”
10여년 전부터 중국 내 항일유적을 답사해 ‘두만강 아리랑’을 발간한 최범산 작가는 “중국에 있는 항일유적에 대한 발굴은 물론 보존·정비작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1시간 정도의 인터뷰 말미에 작가 최범산은 청산리전투를 이야기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지도자들에 더해 전투의 주인공이었던 모든 이름 없는 투사들의 결기를 청년들이 그 길에 서서 느껴 보면 어떨까 상상한다고 했다. 만주 일대의 항일독립전쟁 유적은 목숨마저 던져 나라를 되찾으려 했던 선열들의 자취를 직접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최 작가는 “우리의 관심은 부끄러운 수준”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수많은 유적을 직접 찾아 관련자료를 정리하고 사진을 찍어 100여곳을 소개한 ‘압록강 아리랑’, ‘두만강 아리랑’ 두 권의 책으로 낸 이유다.
“답사 초기에 요령성 유하현에 있는 신흥무관학교 터를 갔었어요. 항일무장투쟁사의 처음이자 끝이고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죠. 유적을 알리는 팻말이 없고 주민들도 모르더라고요. 한국의 관련 단체에 물어봤더니 지금은 옥수수밭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중국 탓만 하고 있었던 거죠.”
2004년쯤이니 10년도 지난 이야기다. 지금이야 정비가 된 곳이 많고, 국내에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게 많다.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광복군 사령부 유적이라고 했다. 1920년대 초 무장투쟁의 기치를 올린 곳이다. 일제 주재소 습격, 친일파 습격 등 국내 진격작전을 80회 가까이 수행했다. 지금의 요령성 관전현에 자리 잡고 있는데 발굴이나 보존 등의 조치가 전혀 없다고 한다.
관심이 높다 한들 중국 땅에 있는 유적을 우리가 얼마나 정비하고 보호할 수 있을까. 최 작가는 맞는 말이라면서도 관심,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최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 정권은 ‘항일’을 정통성의 근간으로 삼는다. 마오쩌둥이 중국을 장악한 힘이 항일투쟁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중국 전역의 항일유적은 ‘애국주의 교육기지’라고 부르며 학생들을 순례시킨다고 한다. 따라서 중국 공산당과 연계되었던 한국의 동북인민혁명군, 동북항일연군은 대대적인 홍보의 대상이 된다. 중국인들이 나서 우리 항일유적을 정비하고 보존한 사례도 있다. 다만 동북3성의 항일유적은 동북공정, 소수민족 정책, 북한과의 관계 고려 등을 고려해 소극적인 면이 없지 않다.
“길이 아주 없는 건 아니죠. 정부나 민간이 노력하면 보존, 정비할 수 있는 곳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의지의 문제죠. 중국은 항일이라고 하면 최고의 교육이라고 여깁니다. ‘너희가 항일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듯 우리도 일본군과 싸운 역사적인 장소를 보존하고 싶다’고 설득하면 됩니다.”
이제 한 세기 전의 일이 된 항일투쟁의 유적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당시의 자취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증거는 거의 사라졌다. 최 작가는 그나마 부족한 자료를 샅샅이 뒤지고, 해당 지역에서 오래 산 노인의 증언을 바탕으로 유적을 찾아간다. 쉽지 않은 일이다.
2011년에 지안시 깊은 산골짜기에 자리 잡은 1925년 3월의 참의부 고마령전투 유적을 찾는 데는 3년이 걸렸다. 당시 여든이 넘은 한족 노인의 증언이 있어서 가능했다. 좋아서 하는 일이기는 하다. 사명감이 그를 이끌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일에 대한 냉소에 힘들 때가 많다. 두만강 아리랑 서문에 최 작가는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만들었던 것은 지인들의 무관심과 주변인들의 냉소, 비웃음”이라고 고백했다. 유적을 찾아내 세상에 알리는 일이 우리 사회의 분열을 조장한다는 비난까지 듣는다.
“친일의 역사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친일파의 후손들은 제대로 사죄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일제강점기를 정당화하는 사람까지 있잖아요. 분란을 일으키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역사적 사실이 잊혀지는 걸 막자는 겁니다. 역사에 대한 해석이야 다양할 수 있지만 역사 자체가 사라지면 그마저도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최 작가는 아직도 소개하지 못한 유적이 많고, 또 새롭게 발굴될 유적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사의 가장 비참한 시기에 총칼을 들고 일제에 맞섰던 수많은 무명의 투사들을 되살리고 ‘독립전쟁’으로 제대로 평가되기까지 힘을 보태고 싶다”고 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