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도 대한민국학술원 기초학문육성 '우수학술도서' 선정
고구려의 와당은 초기 도교적인 배경에서 출발하여 불교수용 이후 연화문이 발생하였고 고구려의 정치상황이 변모함에
따라 문양의 변화도 함께 수반되었다. 고구려의 왕실과 지배층은 거울의 상징적인 의미를 와당에 부여하여 무덤이나
궁전의 처마 끝에 세상 만물의 正邪를 분별하는 ‘거울’을 배치함으로써 왕권의 수호신으로 삼고자 하였다. 기와의 표면에는
여러 가지 글자와 새모양 등 명문을 새겨 왕의 조력자와 왕권의 상징으로 삼았고 나아가 왕릉에 사용하여 영혼의 운반자로서
역할을 부여하였다. 기와에 반영된 이러한 발상의 전환은 중국이나 백제, 신라에서는 볼 수 없는 고구려 특유의 조형 관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고구려의 기와 제작이 낙랑을 비롯한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는 단순한 전파론적 입장은 수정의 여지가 드러나고
있다.